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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1. 희생자

2013년 10월 27일 update

[정리순서, 연번 거주지 희생자 성별 나이 희생지(희생일, 희생추정일) 출처 비고임]

1 중면 마두리 이종봉(李鍾奉) 남 35 금정굴 형사사건기록

2 중면 마두리 최의현(崔義鉉) 남37 금정굴(10. 15) 진실위결정서/형사사건기록

3 중면 백석리 강선봉(姜先奉) 남34 금정굴 형사사건기록

4 중면 백석리 고산돌 남 52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5 중면 백석리 유해진 남 32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6 중면 백석리 한복영 남 32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7 중면 백석리 허정임 여 22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8 중면 백석리 허진임(許眞任) 여 20 금정굴형사사건기록

9 중면 일산리 김광제(金光濟) 남 24 금정굴 진실위결정서/형사사건기록

10 중면 일산리 김규순(金奎順) 남 금정굴(10. 18) 형사사건기록

11 중면 일산리 김석권(金石權) 남 25 금정굴(10. 9) 진실위결정서/형사사건기록

12 중면 일산리 김암권(金庵權) 남 40 금정굴 형사사건기록

13 중면 일산리 김영한 남 금정굴 형사사건기록 이영한의 착오일 가능성있음

14 중면 일산리 김윤권(金允權) 남 28 금정굴 형사사건기록

15 중면 일산리 김○○ 남 금정굴(10. 9) 진실위결정서 김영석의 부친

16 중면 일산리 박순조 남 25 금정굴(10. 9) 진실위결정서 박순환과 형제

17 중면 일산리 박순환 남 23 금정굴(10. 9) 진실위결정서

18 중면 일산리 서상용 남 46 금정굴(10. 9) 진실위결정서/형사사건기록 서병철의 부친

19 중면 일산리 서병철(徐炳喆) 남 24 금정굴(10. 25) 진실위결정서/형사사건기록

20 중면 일산리 서병욱 남 19 금정굴(10. 9) 진실위결정서/형사사건기록 서병철의 동생

21 중면 일산리 안석모(安錫模) 남 25 금정굴 형사사건기록

22 중면 일산리 안용택(安龍澤) 남 31 금정굴 형사사건기록

23 중면 일산리 안희준(安熙俊) 남 26 금정굴(10. 9) 진실위결정서/형사사건기록

24 중면 일산리 윤영규(尹榮圭) 남 25 금정굴 진실위결정서/형사사건기록

25 중면 일산리 ○○○ 여 45 금정굴 형사사건기록 윤영만의 모친

26 중면 일산리 오일섭(吳一燮) 남 금정굴(10. 18) 형사사건기록

27 중면 일산리 이규봉(李圭鳳) 남 57 금정굴(10. 9) 진실위결정서/형사사건기록

28 중면 일산리 이정례 여 17 금정굴(10. 9) 진실위결정서/형사사건기록

29 중면 일산리 이○○ 여 18 금정굴(10. 9) 형사사건기록 이규붕의 차녀

30 중면 일산리 이영창(李榮昌) 남43 금정굴(10. 9) 형사사건기록

31 중면 일산리 이경학(李慶學) 남 22 금정굴(10. 9) 형사사건기록

32 중면 일산리 이계상(李溪相) 남 40 금정굴(10. 18) 형사사건기록

33 중면 일산리 이기철(李起喆) 남 42 금정굴(10. 25) 진실위결정서/형사사건기록

34 중면 일산리 이병호(李炳昊) 남 42 금정굴 형사사건기록

35 중면 일산리 이봉린 남 46 금정굴(10. 9) 진실위결정서

36 중면 일산리 ○○○ 여 40 금정굴(10. 9) 형사사건기록 이종한의 모친

37 중면 일산리 이한상(李漢相) 남 40 금정굴 형사사건기록

38 중면 일산리 이흥철(李興哲) 남 37 금정굴 형사사건기록

39 중면 일산리 ○○○ 여 30 금정굴 형사사건기록 이흥철의 부인

40 중면 일산리 임용태(林鎔泰) 남 29 금정굴 형사사건기록

41 중면 일산리 임종태(任鍾泰) 남 25 금정굴(10. 9) 형사사건기록

42 중면 일산리 장성의(張성儀) 남 25 금정굴 형사사건기록

43 중면 일산리 정대철 남 20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44 중면 일산리 정영학(鄭英학) 남 21 금정굴 진실위결정서/형사사건기록

45 중면 일산리 정한희 남 52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46 중면 일산리 최용복(崔傭福) 남 34 금정굴 형사사건기록

47 중면 일산리 한창석(韓昌奭) 남 40 금정굴(10. 17) 진실위결정서/형사사건기록

48 중면 일산리 홍규원(洪圭遠) 남 38 금정굴 형사사건기록

49 중면 장항리 이창선 남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50 중면 장항리 권학길 남 23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51 중면 장항리 박근식 남 40 금정굴(10. 15) 진실위결정서

52 중면 장항리 박인식 남 19 금정굴(10. 15) 진실위결정서

53 중면 장항리 임상준(林相俊) 남 40 금정굴 형사사건기록

54 중면 장항리 최종석 남 30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55 중면 장항리 한일성(韓日成) 남 20 주엽 하천(10. 18) 형사사건기록

56 중면 장항리 한요수(韓垚洙) 남 21 주엽 하천(10. 18) 형사사건기록

57 중면 주엽리 ○○○ 남 주엽 하천(10. 18) 형사사건기록 한일성 등과 함께 희생

58 중면 주엽리 박희문 남 27 금정굴(10. 9) 진실위결정서

59 송포면 가좌리 김용남 남 39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60 송포면 구산리 김영선 여 57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61 송포면 구산리 전옥자 여 17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김영선의 딸

62 송포면 구산리 이범인 남 46 한강변(10. 30) 진실위결정서

63 송포면 구산리 피원기 남 38 한강변(10. 30) 진실위결정서

64 송포면 구산리 피원순 남 27 한강변(10. 30) 진실위결정서

65 송포면 구산리 김영연 여 62 심학산 진실위결정서

66 송포면 구산리 피경애 여 14 심학산 진실위결정서

67 송포면 구산리 양용한 남 한강변 진실위결정서

68 송포면 구산리 임복성 남 33 한강변 진실위결정서

69 송포면 구산리 한경임 녀 31 한강변 진실위결정서

70 송포면 구산리 임경학 남 6 한강변 진실위결정서

71 송포면 구산리 임복남 남 23 한강변 진실위결정서

72 송포면 구산리 임복만 남 18 한강변 진실위결정서

73 송포면 구산리 홍제관가족 한강변 진실위결정서

74 송포면 구산리 강은성가족 한강변 진실위결정서 강놈산의 가족 가능성 있음

75 송포면 대화리 이돌섭 남 19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76 송포면 덕이리 김천흥 남 45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77 송포면 덕이리 김재환 남 29 금정굴(10. 12) 진실위결정서

78 송포면 덕이리 김영환 남 27 금정굴(10. 13) 진실위결정서

79 송포면 덕이리 유희철 남 30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80 송포면 덕이리 안점봉 남 59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81 송포면 덕이리 안형노 남 35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82 송포면 덕이리 안상노 남 21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83 송포면 덕이리 안용노 남 20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84 송포면 덕이리 이용우 남 26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85 송포면 덕이리 최재옥 남 24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86 송포면 덕이리 최연 남 27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87 송포면 덕이리 최담 남 22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88 송포면 덕이리 최단(崔단) 남 27 금정굴 형사사건기록

89 송포면 덕이리 박만협 남 28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90 송포면 덕이리 조병호 남 39 금정굴(10. 13) 진실위결정서

91 송포면 덕이리 김진섭 남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92 송포면 덕이리 김명산 남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93 송포면 덕이리 방용섭 남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94 송포면 덕이리 김만성 남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95 송포면 덕이리 김진홍 남 24 금정굴(10. 23) 진실위결정서

96 송포면 덕이리 안종덕 남 16 새벽구덩이(10. 21) 진실위결정서

97 송포면 덕이리 안종옥 남 12 새벽구덩이(10. 21) 진실위결정서

98 송포면 덕이리 최영실 남 20대 진실위결정서

99 송포면 덕이리 최원영 남 진실위결정서

100 송포면 법곶리 심기만 남 23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101 송포면 법곶리 심우현 남 26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102 송포면 법곶리 심준섭 남 26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103 송포면 법곶리 유필준 남 35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104 송포면 법곶리 노인성 남 24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105 송포면 법곶리 심재천 남 25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106 송포면 법곶리 노춘석 남 39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107 벽제면 내유리 김상국 남 21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108 벽제면 내유리 김호연 남 23 금정굴(10. 17) 진실위결정서 

109 벽제면 사리현리 서정희 남 35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110 벽제면 사리현리 김대봉 남 20대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111 벽제면 사리현리 이봉훈 남 40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112 벽제면 사리현리 최대철 남   진실위결정서 

113 벽제면 사리현리 이○○ 남 20  진실위결정서 원종선 외삼촌

114 벽제면 사리현리 김화진 남 20대  진실위결정서 

115 벽제면 성석리 박상진 남 41 뒷골(10. 30) 진실위결정서 

116 벽제면 성석리 현아순 여 39 뒷골(10. 30) 진실위결정서 

117 벽제면 성석리 박성인 남 17 뒷골(10. 30) 진실위결정서

118 벽제면 성석리 김현세 남 35 뒷골(10. 30) 진실위결정서 

119 벽제면 성석리 차제순 여 38 뒷골(10. 30) 진실위결정서 

120 벽제면 성석리 김태규 남 13 뒷골(10. 30) 진실위결정서 

121 벽제면 성석리 김봉규 남 6 뒷골(10. 30) 진실위결정서 

122 벽제면 성석리 이해용 여 23 뒷골(10. 30) 진실위결정서 

123 벽제면 성석리 김용배 남  뒷골(10. 30) 진실위결정서 

124 벽제면 성석리 김현남 남  뒷골(10. 30) 진실위결정서 

125 벽제면 성석리 안일례 녀  뒷골(10. 30) 진실위결정서 

126 벽제면 성석리 홍기원(洪起源) 남 20 금정굴 진실위결정서/형사사건기록 

127 벽제면 성석리 ○시원 남  뒷골 진실위결정서 

128 벽제면 성석리 신명복   뒷골 진실위결정서 

129 원당면 도내리 장기연 남 27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130 원당면 도내리 장석용 남 29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131 원당면 도내리 장기철 남 25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132 원당면 주교리 박중원 남 43 금정굴(10. 9) 형사사건기록/진실위결정서 박상하의  부친

133 원당면 주교리 박상하(朴商夏) 남 21 금정굴(10. 9) 형사사건기록/진실위결정서 

134 신도면 현천리 황을성 남 37 현천리 진실위결정서 

135 신도면 현천리 황뇌성 남 42 다락고개 진실위결정서 

136 신도면 현천리 정범성 남 30 현천리 진실위결정서 

137 신도면 화전리 황재덕 남  화전리 진실위결정서 

138 신도면 화전리 황온순 남  현천리 진실위결정서 

139 신도면 화전리 지희덕 남 30 화전리 진실위결정서 

140 신도면 화전리 유순범 남  화전리 진실위결정서 

141 지도면 강매리 이태우 남 40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142 지도면 강매리 심언섭 남 30  진실위결정서 

143 지도면 신평리 이병희 남 27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144 지도면 행주외리 이금현 여 46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145 은평면 수색리 김순동 남 38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146 은평면 수색리 황용문 남   태극단투쟁사 

147 은평면 구산리 정씨 여 53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148 은평면 구산리 안종건 남 19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149 은평면 구산리 안복례 여 17 금정굴 진실위결정서 

150 은평면 불광리 고춘선 남 41   

151 파주 교하면 야당리 채기동 남 36 금정굴(10. 18) 진실위결정서 형사사건기록 참고

152 김포군 하성면 석탄리 어수갑 남 55 금정굴(10. 23) 진실위결정서 형사사건기록 참고

153 미확인 박동수(朴동수) 미상 미상 금정굴 현장 발굴 도장 

154 미확인 심상신(沈相愼) 미상 미상 금정굴 현장 발굴 도장 

155 미확인 이영희(李英姬) 미상 미상 금정굴 현장 발굴 도장

나. 희생자들은 어떤 사람이었나

국군 수복 시 이미 인민위원회 간부 등 부역자 대부분은 월북 피신하였거나 행방불명된 상태였다. 그리고 인민군 점령하 인민위원회 간부들은 선거에 의해 선출된 사람들로 대개 각 리의 주민대표자들이었으며 해방정국에서의 좌익 활동은 물론 정치․사회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던 주민들도 많았다. 

특히 당시 주민들은 인민위원회 참가 혹은 협력행위를 좌익 활동으로 보기보다는 일반 행정에 대한 지원활동으로 보았으며, 그에 가담한 사람조차도 대부분 명시적․묵시적 압력에 의해 할 수 없이 일을 하게 된 것이므로 국군 수복 후 극형을 받게 될 행위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 확인된다. 그러나 이러한 정도의 소극적 협력을 한 사람조차 일부에 해당할 뿐이었으며, 대부분은 그의 가족 또는 친척이었다. 한편 부역혐의와 무관하게 개인 감정에 의한 무고로 희생되는 경우도 있으며, 그 중 상당수는 가족이나 증인을 찾을 수 없어서 아직도 개인별 희생의 원인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이 경우도 대부분 부역행위와 무관하게 ‘부역을 했을 것이라는 혐의’만으로 희생당한 것은 분명하다고 판단된다.

이들의 희생 원인을 구체적으로 나누어 보면 인민위원회 간부, 인민위원회 간부의 가족, 의용군의 가족, 전쟁 전 좌익혐의자의 가족, 우익인사들과 사적 원한관계에 있다가 보복을 당한 주민 등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강조되는 특징에 의한 것일 뿐 현실에 있어서는 모두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즉 대개 인민위원회 간부였던 주민은 마을의 지도적 위치에 인사들로서 한국 사회의 큰 흐름과 무관할 수 없었으며, 해방 직후의 민족 자치활동, 전쟁 직전의 우익단체와 일정한 관계를 피할 수 없었고, 이 때문에 다시 인민위원회 간부로 선출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인민위원회 또는 사회단체 간부>

부역혐의 희생사건의 희생자들 대부분은 인민위원회, 농촌위원회, 여성동맹위원회, 교육위원회 등 관련자들로서 행정관련 기관에서 일한 것이므로 국군 수복의 경우에도 극형의 대상이 아니라고 여겼던 주민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전쟁 전부터 지역 사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했던 주민들이었다. 이들에게는 전쟁 후 피난 갈 형편이 되지 못했거나 인민군 점령기에 피난 갔다가 돌아와서 어쩔 수 없이 직책을 맡게 된 경우가 많았다. 특히 전쟁 전부터 마을에서 면장․구장․교사 등 지도적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은 인민군 점령 후에도 인민군의 압력 아래 하던 일을 계속 하게 되어 희생된 경우도 많았다.

<부역혐의자의 가족 및 친인척>

사건 피해자 중에는 부역혐의자의 가족 혹은 친척이었다는 이유로 희생당한 경우가 부역혐의자라는 이유로 희생된 경우보다 훨씬 더 많았다. 이런 사정에 대한 증언은 희생자 유족 당사자보다 치안대 등 가해자 측에서 더 많이 확인된다.

태극단 감찰부장 김경열, 치안대원 김규용은 희생자들에 대해 ‘공산주의자 보다는 애꿎은 가족이었다.’라고 했으며, 고양경찰서 의용경찰대원 엄진섭은 “고양군 중면 치안대원이나 고양서 의용경찰대원들이 부역자와 그 가족을 체포하여 왔습니다. 가족들까지 잡아 온 것은 본인도 보았는데 왜 잡아왔는지는 전술한 조병세 등이 잘 알 것입니다.”라고 했다. 조병태는 “인민군에 협조한 자와 그 외 그 가족까지도 총살을 시키고 있습니다. 가족까지 총살시키는 연유는 경찰서에서 하는 일이라 본인들은 모릅니다.”라고 하였다. 태극단원 김인한은 경찰이 인공치하 당시 인민군 측에 의해 피해당한 감정으로 부역혐의자의 가족까지 희생시킨 것이라고 하였고, 고양경찰서 유치장을 관리하던 순경 정준섭은 유치장에 있던 사람들이 “무슨 빨갱이 일을 한 것도 아니고, 사촌이 일 좀 봤다면 말도 못하고 다 들어갔다”라고 하였다.

한편, 당시 고양지역의 여론을 대변하는 위치에 있었던 중면장 최영직은 희생자들이 “부역행위를 한 자들도 있고 부역행위자들의 가족도 있고 또는 전부 애매하다고 생각되는 자도 있습니다. … 그 당사자가 도피하여 검거치 못 하였을 때, 그 친척에게 대신 처벌한 데 대해서는 가혹하다는 평이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정치적 반대 입장 등 개인감정이 있는 희생자>

희생자 중에는 대한청년단 등 우익단체 소속이었던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사정은 한국전쟁 직전 각 지역의 시민사회가 붕괴하여 모두 관변단체로 편입된 사정에 있었다고 판단된다.
당시 모든 청년단체는 대한청년단으로 통합되었으며 지역의 유지들은 민보단 등에 가입되어 있었다. 그리고 남로당 등 좌익계열의 인사들 대부분은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전쟁 전 대부분의 주민들이 관변단체에 모두 가입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피난하지 못했던 우익인사들이 국군 수복 후 부역혐의로 희생되는 것은 당시 이승만 정부의 정책으로 보아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은 아니다. 이러한 경우로 확인되는 대표적인 희생자는 중면 일산리 한창석과 중면 마두리 최의현이다.

<기타>

희생자 중에는 고양군의 주민들이 아닌 경우도 있었다. 당시 벽제면 성석리 어씨 집안에서 피신했던 김포 하성면의 어수갑, 이북 출신의 예심판사, 전라도에서 피신 왔다가 희생된 사람도 있었다.